
도시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렵고 고된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 고비용의 사교육, 자연과 단절된 생활. 많은 부모들이 ‘이게 과연 옳은 길인가?’라는 질문을 품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몇 년 사이,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바로 ‘농산어촌유학’입니다.
농산어촌유학은 말 그대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시골로 들어가 일정 기간 그곳에서 살며 지역 학교에 다니는 것을 뜻합니다. 단순한 체험학습이나 주말 농장이 아닌, 생활 그 자체를 옮기는 삶의 전환입니다. 그 중심에는 ‘농산어촌유학마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이 유학마을은 지방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농촌 지역과, 도시에서의 삶에 지친 가족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접점에서 탄생했습니다. 지역 입장에서는 줄어드는 학생 수로 인해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를 살리고, 공동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도심에서 온 가족들은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우며 삶의 균형을 되찾고, 공동체의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월세 12만 원' 유학마을 만들었더니‥지역 활기 (2025.05.19/뉴스투데이/MBC) - https://youtube.com/watch?v=H7ypDAWMCbI&si=-Uh5cr5kvlzPEZHw
※ 유튜브 채널 MBC영상 참조:자세한 내용은 영상 시청 추천합니다!
유학마을은 단순히 ‘집만 있는’ 마을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교육청이나 지자체의 지원으로 조성된 공동주택 형태의 모듈러 하우스, 혹은 리모델링된 농가주택들로 구성됩니다. 여기에 공동 육아, 지역 문화체험, 주말 농사활동, 주민과의 교류 프로그램이 함께 운영됩니다. 아이들은 지역 학교에 전입해 교우관계를 형성하고, 다양한 자연 속 체험을 통해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성장의 기회를 얻습니다.
예를 들어, 전남 장흥군의 임리 유학마을은 지방소멸 대응기금을 활용해 조성된 대표적인 유학마을입니다. 주택 10동이 조성되었고, 이미 여러 가족이 입주해 아이들은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농촌 일손 돕기, 마을 가꾸기 등의 활동에 참여하며 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쌓아갑니다. 한 가족의 아버지는 “이전에는 아이와 대화할 시간도 없이 퇴근과 동시에 지쳐 쓰러졌는데, 이곳에서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시간이 가장 소중한 일상이 됐다”고 말합니다.
농산어촌유학의 가장 큰 장점은 ‘자연과 사람, 시간’입니다. 아침에는 닭이 우는 소리에 눈을 뜨고,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은 산과 들, 개울을 따라 이어집니다. 방과 후에는 지역 친구들과 논에서 개구리를 잡거나, 마을 회관에서 어르신들과 윷놀이를 합니다. 부모는 아이를 학원에 맡기기보다, 함께 밭을 갈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도시에서는 돈을 들여야 겨우 한 번 할 수 있는 활동들이 이곳에서는 일상이 됩니다.
물론 모든 것이 낭만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느린 행정 처리나, 한정된 인프라, 외부인으로서의 낯설음이 어려움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족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그 느림에서 여유를, 그 부족함에서 창의적인 삶의 방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도시의 효율 중심 문화에 익숙했던 이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우게 하는 곳, 그게 바로 유학마을입니다.
최근에는 전남 외에도 경북, 충북, 강원 등 여러 지자체들이 유학마을 조성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지방소멸 대응 전략 중 하나로 농산어촌유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체재비 지원이나 거주 공간 제공 등 다양한 혜택을 통해 참여 문턱을 낮추고 있습니다.
‘돌봄이 곧 삶이고, 교육이 곧 자연이며, 공동체가 곧 교실이 되는 곳’ — 농산어촌유학마을은 단순한 이주가 아닌, 가족의 삶 전체를 새롭게 설계하는 기회입니다. 도시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 아이의 삶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고 싶은 부모라면, 잠시 멈추고 이 유학마을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운 일이지만, 그 끝에서 전혀 새로운 일상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